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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려)후원기관상

햇빛속으로

수상연도: 2021년부문:인식제고콘텐츠수상자: 김보미

햇빛속으로.hwp

햇빛속으로 
 
 퍽! 소리보다 등을 치는 감각이 먼저 심장을 울린다. 앞으로 고꾸라진 내가 바들바들 떨며 앞으로 기어가자, “1등!” 이라고 외친 아이가 내 등을 꾹 밟았다. 더는 움직이지 못하고 차례대로 아이들이 등수를 외치며 등을 밟고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매일 이마가 찢어지거나, 코피가 터졌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팔다리가 뒤틀려 지체장애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술 취한 사람처럼 균형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걷는 나를 아이들은 지독하게 괴롭혔다. 나를 뒤에서 밀어 넘어뜨린 다음 밟고 지나가는 놀이 때문에 학교가 지옥이 되었다.
 그래도 뒤틀린 팔다리를 조금이라도 쓸 수 있게 만들어주시려고 밤낮 일을 하며 치료비를 버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견뎠다. 학교만은 졸업해야 한다고, 그래야 세상에 섞여 살 수 있다고 간곡하게 말씀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12년의 지옥을 견뎠다. 
 마침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진학했을 때는 나도 모르게 꿈에 부풀었다.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이만큼 괴롭지 않겠지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디에도 내가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자리는 없었다. 나는 투명인간처럼 무시를 당하거나, 애매한 조롱을 받았다. 그러다가 대낮의 거리에서 꼴 보기 싫다는 이유로 묻지마 폭행을 당하고 말았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불편한 몸으로 걸리적거리게 거리를 돌아다닌다며 욕과 함께 주먹을 휘둘렀다. 병원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그간 고통을 견뎌오던 모든 힘을 잃어버렸다. 공포와 절망이 전신을 무겁게 짓눌렀다. 
 길에서 모르는 사람을 때려눕힐 수 있을 정도의 증오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저주의 대상이었다. 정신과 신체에 가해진 지속적인 타격이 무력감을 남겼다. 다시는 바깥세상으로 나가기 싫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가족들의 오랜 설득에도 나는 내 방에 틀어박혔다. 점점 굳어가는 팔다리를 생각해서 병원만이라도 가자는 부모님의 말씀에 나는 자조적인 웃음을 터트렸다. 조금 더 나아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나는 어차피 세상에 섞여 살 수 없는 괴물이라고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질렀다. 
 그날 이후로 가족들도 더는 내게 바깥세상을 강요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 갇혀 자발적인 죄수가 된 나는 컴퓨터를 켜고 온갖 드라마와 영화에 빠져들었다. 현실은 차단한 채, 가상의 이야기와 영상에 취하다시피 한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다가 신작 영화나 드라마 이야기를 하는 커뮤니티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과 대화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품이 재밌다, 재미없다 정도의 의견을 나누는 것에 그쳤던 대화가 점점 더 깊어졌다. 내 신체적인 조건이 드러나지 않는 익명성이 주는 자유로움은 마약과 같았다.
 온라인에서 몇 시간씩 대화를 나누던 우리는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메신저로 연락했다. 가족들의 연락이 아니면 울리지 않던 전화기가 바쁘게 울려댔다. 그들과 나누는 연락과 대화가 점차 절실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리는 어떤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중, 의견이 갈렸다. 다수가 형편없는 작품이라고 혹평을 하는데 한 명이 반기를 들었다. 그 순간, 평생 약자로 살아왔던 나는 문자에서도 증오의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다수는 소수를 향해 스멀스멀 자신들의 의견을 강요하며 공간을 장악하려고 했다. 
 선택의 순간,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다수의 편에 섰다. 그들 중의 하나로 소속감을 느끼는 지금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발도 못 붙였던 세계에 내 자리가 생긴 기분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 내키지 않아도 다수의 편에서 함께 소수를 비난했다. 
 그쯤에서 소수가 물러났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고, 전문적인 지식과 전문가 평가를 찾아 다수의 의견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간 다수가 좋다고 하는 것이 절대적인 평가 기준이 되어 온 것이 옳지 않다고 했다.
 그러자 다수 중에서도 분위기를 주도하던 몇 명이 사납게 그를 몰아붙였다. 대부분 작품 평가와는 관계없는 인신공격이었다. 그간 친밀하게 지내며 나누었던 속마음이 이제는 서로를 공격하는 무기로 둔갑했다. 
 결국, 그는 공개적으로 다수의 행태를 고발하는 글을 커뮤니티에 남겼다. 작품 평가를 위해 모였으니 개인의 자유로운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당연한데, 다수라는 이유로 그걸 억압하는 것은 불공평한 처사라는 내용이었다.
  그때부터 전쟁이 시작되었다. 다수의 우두머리가 우리에게 명령에 가까운 부탁을 했다. 우리는 소수인 그가 작성한 모든 글에 악의에 가까운 답글을 달았다. 그의 개인적인 sns에도 모욕적인 메시지와 댓글을 남겼고, 단체 채팅방에서도 초대했다가, 추방했다가를 반복하며 끈질기게 괴롭혔다. 
 앞장섰던 몇 명이 그의 개인적인 친구들 sns까지 뒤져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남긴 날, 그는 더는 참지 않겠다는 댓글과 함께 우리를 경찰에 신고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다수와 내가 그에게 남긴 댓글을 찬찬히 되짚어 봤다. 
 읽으면 읽을수록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건 내가 평생 학교와 거리에서 들어온 말들이었다. 사람들이 내게 내뿜던 맹목적인 증오와 경멸이었다. 나는 다수에 속해 강자가 되었다는 착각을 했다. 익명의 탈을 쓰고 세상이 나를 괴롭힌 대로 그를 잔혹하게 공격한 것이다.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올랐다. 내가 약자일 때는 겪었던 수치와 고통을 다른 약자에게 되풀이했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면서도 말이다.
 나는 경찰에게 나의 죄를 시인하고, 어떤 처벌이든 달게 받겠다고 했다. 내 태도가 변하자 다수가 이번에는 나를 공격 목표로 삼겠다고 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그에게도 메시지를 보내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는 한참 만에 내 사과를 받아주었다. 그래도 처벌은 받았으면 한다는 그의 말에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몫으로 나온 벌금을 내고 나는 난생처음 가졌던 ‘무리’를 잃었다. 내가 정상인이 된 것 같은 기분도, 세상이 나를 환영해주는 것 같은 착각도 함께 사라졌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대신 나는 그간 내가 당한 괴롭힘과 증오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그들에게 ‘나’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라서 괴롭힌 것이 아니라 맹목적으로 공격할 대상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내가 약하기 때문에 다른 이를 공격해서라도 그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약자를 향한 괴롭힘이란 실은 자신의 약함에 대한 혐오임을 깨달았다. 
 그러자 그간 나를 가둔 두려움과 맞설 용기가 생겼다. 복학신청을 하고, 병원에도 다녔다. 오히려 정면으로 부딪치겠다고 결심하고 나니 덜 무서웠다. 졸업하고는 남들처럼 직장을 얻기 위해 취업준비생이 되었다. 숱하게 서류전형에서 탈락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게 속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사실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희망이 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가 내 비틀거리는 걸음을 보고 세상에 나올 용기를 얻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렇게 나는 어둠에서 나와 햇빛속으로 걸을 수 있었다. 일자리도 찾을 수 있었고, 꾸준한 재활로 걸음걸이도 훨씬 나아졌다.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던 생활을 내 힘으로 이룩할 수 있었다. 사회구성원으로, 노동자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공격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자신이 남긴 댓글에는 ‘내’가 남아있다. 실은 그 공격이 나의 약함과 나 자신에 대한 혐오를 드러낼 뿐이라는 걸 깨닫는다면 다른 사람에게 사이버 폭력을 비롯한 어떤 폭력도 휘두를 수 없을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모두가 햇빛속으로 걸어갈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